(편지글)사랑하는 딸에게...<올창묵에 대한 슬픈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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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2-17 14:35 조회9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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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묵(올창묵)에 대한 슬픈 기억"

손님과 상담하는 자리였다.
으레 그렇듯이 초면 손님과의 대화는 고향이 어디이냐는 물음과 더불어 자연스레 이야기를 끌어낸다.
나이가 55세라고 하시는 아주머니는 고향이 부산이라시며 나의 고향을 물어왔다. 여기서 가까운 영월이라고 하자 아주머니는 왜 고향을 가지않고 이곳에 뿌리 내렸느냐고 다시 되물어 오셨다.
아빤 고향에 대한 좋은 추억이 별로 없기 때문에 고향을 피해서 왔노라는 대답과 함께 즈음 봉평장날 난전에서 팔고 있는 올창묵으로 화제가 옮겨 갔다. 화제가 여기에 이르자 아빤 부끄러움도 모르고 눈시울을 글썽였다. 그리곤 눈물을 훔쳐내었다.
곤궁한 시절을 보내던 어린 시절의 이맘때 할머니께서는 늘상 올창묵을 만들어 상에 올리곤 하셨다. 올창묵이란 것이 딸도 보아서 알겠지만 묵도 아니고 죽도 아닌 것이, 단지 잘 양념된 간장 맛으로 먹어야 가까스로 목구멍에 넘길 수 있는 그런 음식이다.
아빤 그 가난한 날에도 올창묵만은 정말 먹기 싫은 음식이었으므로 할머니께서 올창묵을 만들어 내오시면 입맛이 없다며 슬그머니 밀어 놓기 일쑤였다.
아무리 할머니께서 무지렁뱅이(무지렁뱅이란 사람의 인격을 낮추어 불려지는 것이겠으나 법 없이 평생을 남에게 해코지 한 번 하신 일이 없으신 분이기도 하시므로 예의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표현만이 할머니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겠다)시었다 할지라도 자식의 속내를 모르실리 없었으므로 할머니는 부랴부랴 다시 옥수수쌀을 불려 따뜻한 강냉이밥을 지어 내 오시곤 하셨다. 못먹겠다고 자리를 물러나는 어린 것이나 곤궁한 시절을 식솔들 굶기지않고 견뎌 내시려는 할머니나 마땅한 수단이 없었을 정말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그렁그렁 눈시울 적셨던 것이다.
화천이나 평창 등 강원도의 여행지 난전에서 딸이나 엄마에게 올창묵을 먹지 못하게 했던 것도 아빠의 이런 슬픈 기억들 때문이겠다. 할머니께 아빠는 이런 잘못들을 용서 구하지 못했다. 그것이 여태 죄송스럽다.
그 가난한 시절에 할머니께서 할 수 있었던 일이란 적은 양의 알곡으로 많은 식솔들의 먹거리를 장만해야만 했으며 멀겋게 죽을 쑤는 일만이 최선이셨으리라는 것을 나이 먹고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가슴에 쾅쾅 대못들을 박아놓고 이렇게 편안하게 사는 일이 갑자기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2006-10-1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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